[인터뷰] “‘기술’은 기업의 생명력과 같은 존재… 유출시 초기 대응이 가장 중요”
서초동에 둥지 튼 ‘기술보호 드림팀’
법무법인 로백스 기술보호센터 출범
김후곤 전 서울고검장, 김서곤·박정호 전문위원이 주축
1998년 삼성전자의 64메가 D램 3세대 반도체 핵심 기술이 대만 기업에 유출됐다. 6년 간 연구원 500여명과 7000억원을 들여 개발한 첨단 기술이었다. 이미 상용화 단계에 있던 기술이 유출된 것이기에 삼성전자에는 비상이 걸렸다. 경쟁사에서 먼저 제품화에 성공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국내에서 이른바 ‘산업스파이’ 문제의 심각성이 대두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기술 유출에 삼성전자의 현직 연구원까지 가담했다는 소식은 우리 사회에 굉장한 충격을 안겼고, 이를 방지할 법적 장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각계각층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로백스 사무실에서 (왼쪽부터) 박정호 기술보호센터 부센터장(전문위원), 김후곤 대표변호사 겸 기술보호센터장, 김서곤 기술보호센터 부센터장(전문위원)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오종찬 기자
김후곤(57) 법무법인 로백스 대표변호사는 국내 기술 유출 범죄의 발전 역사를 목격해온 산증인이다. ‘삼성 반도체 사건’이 발생한 이듬해부터 수원지방검찰청 특수부에서 산업스파이 사건을 담당했으며, 2004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옮긴 뒤에도 첨단범죄수사부에서 산업 기밀 유출 범죄 수사에 앞장섰다.
김 대표변호사는 지난 8월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을 끝으로 법복을 벗고 올해 10월 로백스에 둥지를 틀었다. 검사로서의 26년을 마치고 로펌에 합류하자마자 그가 한 일은 ‘로백스 기술보호센터’를 만드는 것이었다. 1990년대부터 산업스파이와의 전쟁을 지휘해온 이력에 가장 잘 어울리는 행보였다.
지난 7일 서울 서초동 로백스 사무실에서 기술보호센터장을 맡고 있는 김 대표변호사, 부센터장을 맡은 김서곤·박정호 전문위원을 만났다. 두 전문위원은 국가정보기관에서 30년 간 근무하며 산업 경제 정보 유출, 방위산업 침해 및 국가기밀과 방산기술 보호 업무 등을 담당한 베테랑이다.
◇ 기술 유출, 조직화·고도화… “컨설팅부터 분쟁 대응까지 원스톱 서비스”
로백스 기술보호센터는 김 대표변호사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과거 첨단 범죄 수사를 담당하며 국가정보기관과 협력했던 경험을 살려 두 전문위원과 의기투합했다.
국내 기업의 기술 유출은 나날이 조직화·고도화하고 있다. 김서곤 전문위원은 “과거에는 ‘생계형 기술 유출’ 사건이 많았다면, 요즘은 경쟁국 기업들이 회사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핵심 인력을 매수하는 사례가 빈번하다”고 말했다.
김 전문위원은 이들이 핵심 인력 매수를 위해 고액 연봉은 물론 자녀의 국제학교 입학 등 매력적인 조건을 내거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촘촘한 법망을 빠져나갈 수단도 늘었다. 정식 직원이 아닌 비상근 자문역으로 채용하거나, 가짜 연구소를 국내에 두고 핵심 기술을 빼돌린 뒤 해당 연구소를 폐쇄해버리는 식이다. 추적을 피하기 위해 화상 채팅으로 기술 자료를 주고 받는 일도 빈번하다.
기술 유출로 인한 피해는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에서 특히 심각하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최근 5년 간 반도체·자동차·원자력 등의 분야에서 89건의 기술 유출이 발생했는데, 그중 중소기업의 피해 사례가 59%에 달했다. 중소기업부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중소기업의 기술 유출 및 탈취 피해 금액은 2827억원에 육박한다.
박정호 전문위원은 “대기업은 자체적 보안 시스템이 잘 구비돼있는 반면,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은 그런 시스템에 예산이나 인력을 투입하기가 쉽지 않다”며 “오랜 기간 많은 비용을 들여 개발한 기술이 유출되면 회사의 존폐가 위태로워질 수 있지만, 유출의 징후가 나타나더라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안타까운 사례가 많다”고 전했다.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로백스 사무실에서 (왼쪽부터) 김서곤 기술보호센터 부센터장(전문위원), 김후곤 대표변호사 겸 기술보호센터장, 박정호 기술보호센터 부센터장(전문위원)이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오종찬 기자
그러나 기술 유출의 법률 위반 여부를 따지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일이다. 위법과 합법을 가르는 경계나 기준도 모호하다. 김 대표변호사는 “전 직장에서 배운 내용을 이직 후 활용하는 것을 100% 막을 수는 없다”며 “연구원 등 기술 인력들의 인식과 법률적 기준 사이에 괴리가 있는 만큼, 정부나 우리 같은 로펌이 가이드라인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로백스 기술보호센터는 기업 컨설팅과 법률 대응부터 송무를 아우르는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핵심 인력의 입·퇴사시 영업기밀을 보호할 수 있도록 교육을 지원하는 한편 위기 시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사법적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 “기술 유출 징후 나타나면 초기 대응이 가장 중요”
박 전문위원은 기술 유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초기 대응과 사전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해당 기술을 보유한 핵심 연구원과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기술은 기업의 생명력과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출발”이라며 “기술 유출 징후를 알게 되거나 유출 사실을 인지한 경우 초기 대응을 어떻게 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기술의 추가 유출이 없도록 조치하는 방법을 정확히 인지해야 하며, 유출 혐의가 있는 전현직 임직원에게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알 필요가 있다.
박 전문위원은 “과거 기술이 유출된 후 민사소송을 먼저 제기한 기업이 있었는데, 혐의자가 기술 유출과 관련된 자료를 없애버리는 바람에 민·형사적으로 구제를 받을 수 없게 됐다”며 “보안 및 법률 전문가들과 상의해 사법적 구제 조치를 마련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변호사는 “현재 기술 보호 관련 법률로 산업기술보호법, 첨단전략산업법, 중소기업기술보호법, 방산기술보호법 등이 있는데, 각종 법령의 시행령과 세부 지침, 매뉴얼까지 포함하면 수백 페이지에 달해 기업 입장에서 일일이 확인하고 적용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로백스 기술보호센터는 이 같은 내용을 중소·벤처기업에 교육하는 공익적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김 전문위원은 “스타트업들은 로펌에 자문을 구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에, 스타트업얼라이언스나 서울핀테크랩 같은 스타트업 육성·지원 기관들과 손잡고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막 첫발을 뗀 로백스 기술보호센터의 목표는 무엇일까. 김 대표변호사는 “우리나라는 정말 좋은 기술들을 많이 갖고 있으며 창의적인 인재도 많다”면서 “노력을 제대로 평가 받을 수 있도록, 기술 보호를 위해 국가가 할 수 있는 역할에 빈틈이 있다면 우리가 그 틈을 메우고 싶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