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취임 초 바쁜 시기에 7박 8일간의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하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한 장관의 지명 이유로 밝힌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사법 시스템을 정립'하기 위한 과정일 것이라고 필자는 짐작해 본다. 한 장관 일정 중 눈에 띈 것은 뉴욕 남부연방검찰청 방문이었다. 이곳이 미국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매우 높고, 필자도 검사 재직 시 방문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뉴욕 남부연방검찰청은 뉴욕 맨해튼 등을 관할하며, 220여명의 연방검사보가 근무하고 있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검찰청이다. 우리나라의 지검장에 해당하는 임기 4년의 연방검사(U.S. Attorney)는 대통령이 상원 인준을 거쳐 임명한다. 우리나라의 서울중앙지검이나 서울남부지검의 중요 수사부서를 합쳐 놓았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인이 존경하는 검사인 고(故) 로버트 모겐소 지검장이 1960년대 증권 범죄 전담 부서를 설립하여 금융 범죄에 대해 직접 수사를 시작한 전통을 이어받아 '월스트리트의 저승사자'로 불린다. 뉴욕 마피아에서부터 영화 '월스트리트'의 주인공 고든 게코(Gordon Gekko)의 실제 모델 마이클 밀컨(Michael Milken)까지 숱한 거물들을 잡아넣어 미 검찰을 대표하는 기관이 됐다.
필자가 뉴욕 남부연방검찰청을 방문할 당시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부 검사장(Deputy U.S. Attorney)인 준 김(Joon Kim)이 지검장 대행을 맡고 있었다. 당시 미국 검찰의 직접 수사권과 수사 지휘권에 대하여 질문하는 필자에게 준 김 검사장은 자상하게 설명해 주었는데, 올해 초 '검수완박법'논란의 와중에 국내 언론에도 필자에게 몇 년 전 설명했던 내용과 똑같은 취지로 설명했다. 준 김 지검장은 "미국은 수사권과 기소권이 완전한 분리 형태로 운용되지 않고, 수사관과 검사가 협력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대부분의 검찰청에도 직접 수사를 하고, 검찰청 소속 수사관들을 두고 있고, FBI나 경찰도 대부분 검찰의 자문과 지도를 받으면서 검찰과 함께 수사를 진행한다." "더 나은 사건 결과를 위해서 검사와 수사관이 상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정부에서 두 차례 수사권 조정 결과 만들어진 법률은 검찰과 경찰을 협력관계보다는 대립적 관계로 보고 있다. 그에 따라 검경 간에 죄명과 유형별로 권한을 세세하게 나누다 보니 검사로 25년간 복무한 필자도 법전을 보지 않으면 검경 간 수사 범위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 5억원 이상 재산범죄는 검찰이 수사할 수 있지만, 5억원 이하 재산범죄는 경찰만 할 수 있다는 식이다. 5억원 이상 사기 범죄를 수사하다가 사문서위조 범행이 확인되었는데 검찰의 권한 밖이니 경찰에 고소하라고 한다. 사문서위조죄의 공소시효가 한 달도 남지 않았는데 말이다. 필자가 직접 경험한 웃지 못할 이야기다.
졸속 입법의 부작용이 현실화하고 있다. 피해를 보았다고 고소해도, 수사기관이 기업을 대대적으로 압수 수색을 해 놓고도 몇 년간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검경 간에 핑퐁식으로 사건을 주고받을 뿐이다. 바뀐 법률하에서는 검사가 우월적으로 위치에서 책임지고 사건을 조기에 결론 내릴 제도적 장치도 마땅치 않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법률로 피해를 보는 것은 선량한 일반 시민이고, 덕을 보는 것은 범죄자들뿐이다. 정부에서는 장기 미제 현황 등 사건 처리 실태를 조사하여, 국민에게 잘못된 법률 개정으로 어떤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지 공개해야 한다. 국가는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립하고, 이를 위해 수사기관과 검찰 간 협력하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다. 나라마다 협력을 제도화한 모습이 다를 뿐이다. 선진 국가에서는 검사의 사법경찰관에 대한 관계를 명령(order)이 아니라 지도(guide)나 협력(cooperate)으로 인식한다.
수사구조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없이 검찰에 대한 극도의 불신감으로 제도를 바꾸다가 보니 이상한 제도가 만들어졌다. 9·11 테러나 세월호 같은 국가적 참사가 발생해도 법조문 찾아가면서 권한 범위를 따져야 할지 모른다. 검찰과 경찰 간에 이견이 발생하면 법에 정해진 절차로 해결하지 못하고, 국무총리가 나서야 할 판이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수사구조를 신속히 정비하여 범죄에 대한 국가적 대응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야말로 한동훈 장관이 만사를 제쳐두고 시급히 해야 할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