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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국형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 도입이 필요하다

필자가 검사교육기관인 법무연수원에서 신임검사 교육을 담당할 당시 준 김(Joon H. Kim) 전 미국 뉴욕 남부연방검찰청 검사장 직무대리를 초청하여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뉴욕 남부연방검찰청은 미국에서 증권·금융범죄 등 부정부패 수사분야에서 가장 많은 인지수사를 수행하는 핵심 검찰청으로, 미국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인지수사를 하는지에 관한 열띤 질의와 토론이 이어졌다. 준 김 검사는 미국에서 대부분의 인지수사가 플리바게닝을 통해 사건이 종결되고 있기 때문에 플리바게닝 제도가 없다면 뉴욕 남부연방검찰청의 업무수행이 불가능할 것이라며 플리바게닝을 도입하지 않은 한국검찰이 막대한 부정부패 수사실적을 올리는 데 대하여 놀라움을 표시하였다.

사실 부정부패 수사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부패사건에 연루된 중요 공범 또는 참고인의 진술을 확보하고 이를 법정 증언까지 유지시키는 것이다. 1997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구속전 피의자 심문제도가 도입됨을 기화로 변호인 참여권 확대, 법원의 구속영장, 압수수색영장에 대한 발부기준의 강화, 공판중심주의 강화, 검찰조서의 증거능력 약화 등으로 날이 갈수록 피의자의 인권보호가 강조되는 반면, 사회질서 유지를 위한 부정부패 수사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보완책은 거의 마련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수사는 한없이 장기화되고 기소된 사건에 대한 무죄율은 높아져 수사기관에 대한 불신이 쌓이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정치적으로 민감하거나 중요 경제사건 재판에서는 피고인이 불리한 증언을 한 참고인 진술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방법으로 검찰과의 플리바게닝 의혹을 제기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검찰이 수사협조자에 대하여 불기소 또는 구형 참작을 하는 것이 마치 커다란 불법을 저지른 것처럼 인식되어 있고, 언론에서도 현행법상 플리바게닝은 불법이라는 식의 보도를 접하곤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미 많은 개별 법령에서 플리바게닝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정치자금법은 정치자금 범죄의 수사협조자가 저지른 자기 범죄에 대해서는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 특정범죄신고자 등 보호법’에서는 마약범죄, 강력범죄 등에서의 수사협조자에 대한 처벌감면을, 내년 1월 19일부터 시행되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서는 주가조작 사범과 같은 금융·증권범죄에서 수사·재판 협조자에 대한 형의 감경 또는 면제를 규정하고 있다. 게다가 ‘공정거래법’에서는 담합행위 공범의 조사협조에 대하여 과징금의 감경 또는 면제뿐 아니라 형사고발까지 면제할 수 있는 리니언시(Leniency) 제도를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 현행 법제하에서는 사실상 광범위하게 플리바게닝 제도를 규정하고 있음에도 논란이 되는 것은 개별 법규에 규정이 없는 뇌물죄 등과 같은 형사사범에서 일반적으로 수사협조자의 선처를 조건으로 진술 또는 수사협조를 받는 플리바게닝 제도를 도입할 것인가에 있다.

물론, ‘범죄자와의 거래’라는 점에서 국민의 법감정에 맞지 않고, 중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가 가벼운 수사협조로 과도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거나, 처벌면제를 위해 허위진술을 함으로써 오히려 실체적 진실 발견을 저해할 수 있다는 문제점과 비판은 타당한 면이 있다.

그렇지만 피의자 자백이나 참고인 진술은 얻기도 어렵고 최근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 제도 도입 논란에서 보는 바와 같이 물적 증거 확보도 점점 어려워지는 수사현실 속에서 범죄를 가장 잘 아는 공범이나 참고인에게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실체적 진실 발견에 협조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함으로써 자칫 사장될 수 있는 거악(巨惡)을 찾아내 척결할 수 있다면 우리사회가 보다 깨끗해지고 투명해지는 데 기여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다만, 플리바게닝 제도의 남용과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플리바게닝의 대상범죄를 한정하고, 플리바게닝의 결과에 대한 법원의 심사 및 부당한 플리바게닝에 대한 재정신청과 같은 시정장치를 마련할 필요는 있다고 할 것이다.

미국검찰이 플리바게닝을 한 증인을 배심원 앞에 세울 때 관행적으로 이런 말을 한다고 한다. “배심원 여러분이 이 사람을 좋아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이 사람이 하는 말이 사실에 부합하는지와 정의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해 주십시오”



이동열 로백스 대표변호사



대한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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